한류문화진흥원 이사님들,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경기도 양평에 있는 이성근 미술관을 찾았습니다.

한류문화진흥원 이사님들,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경기도 양평에 있는 이성근 미술관을 찾았습니다.

한류국제문화콘텐츠교류진흥원 0 23 03.26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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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토요일 3월 14일에는 한류문화진흥원 이사님들,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경기도 양평에 있는 이성근 미술관을 찾았습니다.


한국의 피카소 

20년지기 이성근화백님을

만나기 위해 경기도

양수리이성근 미술관을

찿아서 긴만에 눈과

귀가 호강을 하였다


절제된 화폭으로

소리를 그리는 이성근 화백은

나의 오랜 지인이다

                                   

 이성근 화백은 세계적으로 말을 가장 잘 그리는 화가로 이름났다. 이성근 화백은 이당 김은호 화백의 제자로 1999년 제6회 이당 미술상을 받았다. 그는 종종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와 비교된다. 피카소가 사물을 해체하며 본질에 접근했다면, 이성근 화백은 사물의 색깔과 소리를 결합하여 본질에 접근한다. 인간이 접하는 사물은 색, 소리, 촉감, 그리고 지각(知覺)을 통해 본질을 드러낸다. 100년을 살기 어려운 인간은 이 중에서 한 가지를 제대로 다루기도 어렵다. 그러나 이성근 화백은 색깔과 소리를 화폭에 함께 담고 영원의 한 토막을 보여주고, 들려준다. 특히 이성근 화백은 말을 자주 그렸는데, 말을 그렸다기보다 말이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부르짖는 소리를 화폭에 담았다. 이 화백의 그림 제목은 ‘군마’, ‘환희’, ‘가족’ 등 세 항목으로 집약된다. ‘군마’에 속하는 그림은 서로 다른 개체의 말이 공통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다른 말과 소통하는 소리를 담아, 인간이 공동체를 통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가는 본능(本能)을 드러낸다. ‘환희’에 속하는 그림은 모든 생명체의 재생산 과정의 시작을 알리는 포효가 들어있어서 인간관계의 본질(本質)을 들려준다. ‘가족’에 속하는 그림은 ‘소리’의 한계를 극복하며 세대를 잇는 본성(本性)의 침묵을 담고 있다. 침묵은 가장 무거운 소리에 해당한다. 

  이 화백이 말을 자주 그리는 이유는 말이 가지고 있는 세 가지 덕목 때문이다. 첫째, 말은 빨리 달릴 수 있다. 빨리 달리는 말은 새로운 상황을 접하고 만든다. 새로움은 항상 변화를 촉발한다. 따라서 말은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이 변하고 있고, 변해야 할 이유를 보여준다. 이 화백은 말 그림을 통해 끊임 없이 변하는 우주의 원초적 색깔을 소리로 치환하고 있다. 둘째, 말은 멀리 달릴 수 있다. 말이 멀리 달리기 위해서는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주변을 헤아려야 한다. 또한 말은 멀리 달리기 위해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는 예지력을 지녔다. 따라서 말은 단순히 변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적응하면서 진화하는 생명체의 표본이다. 이같이 이 화백은 말 그림을 통해 오랜 진화의 침묵과 순간의 환희를 들려준다. 셋째, 말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동반자를 영웅으로 만든다. 전쟁터에서 말은 영웅을 받쳐주고, 정작 자신은 이름조차 남기지 않는다. 말은 자신의 노력으로 경주를 이기고도 승리의 기쁨은 자신에게 짐이었던 인간의 몫으로 돌린다. 이같이 말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주위를 낮추는 인간과는 달리 자신을 낮추어 주변을 돋보이게 한다. 이러한 말의 세 가지 덕목은 이성근 화백의 화폭으로 옮겨져 세상을 바라보는 좌표를 제시한다. 이성근 화백은 자신을 낮추고 세상을 올려보는 겸손을 타고났다. 이 화백은 또한 사물의 본능, 본질, 본성을 바라볼 수 있는 심미안(審美眼)을 갖춰 이를 통해 보이는 ‘색깔’과 들리는 ‘소리’를 결합하는 새로운 회화 기법을 창안하였다.

  이성근 화백의 말 그림을 보면 항상 어느 순간에 머물지 않는 ‘동작’과 그러한 동작을 뒷받침하는 ‘소리’가 담겨있다. 뭉크(Edvard Munch, 1863-1944)도 ‘절규(Scream)’라는 작품에서 공포의 소리를 화폭에 담으려고 노력했었다. 하지만 ‘절규’의 소리는 뭉크의 특유한 붓칠로 인해 화폭 안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절규’에서 시도됐던 공포의 소리는 그래서 묵음으로 정지된 체 들리지 않는다. 그에 비해 이성근 화백의 그림은 항상 열린 공간을 향한 소리의 자유분방함을 보여주고 들려준다. 이성근 화백의 화폭에서 여백이 갖는 소리의 전달력은 가히 인간의 인식 속도를 능가한다. 이성근 화백이 진정한 ‘소리의 화가’로 불려야 할 이유다.


올해 2026년은 ‘붉은 말(赤馬)’의 해라고 한다. 

벌써  3개월이 훌쩍 지나갔다


빨간 말이 세상을 향해 질러대는 소리는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을까? 


아마도 탐욕과 시기, 질투로 일그러진 인간 사회에 피 토하듯 질러대는 경고의 메시지는 아닐까?


2026년 이성근 화백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들려줄 ‘빨강과 소리’의 결합이 이제까지 인간 사회를 진단하고 앞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것으로

믿어의심치 앓는다


오늘 만나서 맛난  쌀국수

먹으면서 

나는 보았다 


절제된 언어와

화폭과 노화백의 여백을

통해


이성근 화백이 2026년  토해낼 ‘붉은 말의 소리’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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